남산 위 다섯 개 굴뚝남산에 오르면 눈길을 끄는 검은 벽돌의 굴뚝 다섯 개가 있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 남산봉수대다. 서울시의 전경을 조망하기에도 좋지만 예전에는 릴레이식 통신 수단의 일종이었다. 변방의 급박한 사정이나 위급한 사태를 신속히 전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설치하고 봉수를 올려 중앙으로 소식을 전했다. 남산봉수대의 역사는 조선 개국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조는 1394년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남산에 봉수대를 설치했다. 전국의 봉수에서 올라오는 소식이 최종적으로 전해지는 중앙 봉수소였다. 남산의 옛이름을 따 목멱산(木覓山) 봉수라고도 하고 서울의 의미를 따 경봉수라고도 했다. 다섯 개의 봉수대에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피워 신호했는데 그 수에 따라 의미가 달라졌다. 평상(평화) 시에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경계에 접근하면 셋, 침범하면 넷, 적과 아군이 충돌하면 다섯을 피워 올렸다. 조선 시대 때는 전국적으로 673개의 봉수가 있었는데 어떤 일이 생겨도 하루 만에 서울의 남산봉수대까지 소식이 전해졌다고 한다.순라의식과 거화의식남산에는 원래 각기 다른 다섯 군데에 봉수대가 있었는데 팔각정 앞의 남산봉수대는 그 가운데 하나를 1993년 복원한 것이다. 남산봉수대는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5년까지 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후 1993년‘청구도’등 관련 자료를 종합해 복원했으나 낙서 등 훼손이 심해 2005년부터 출입을 폐쇄했다. 그러다 2007년 다시 개방하며 거화의식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거화의식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를 전후해 열린다. 의식은 정오 약 30분 전부터 봉수대를 지키는 수위의식과 봉수대 주변을 순찰하는 순라의식을 시작으로 진행된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봉수군들의 나발과 나각 소리가 거화의식이 곧 진행될 것임을 알린다. 종로의 종각에서 12번의 타종이 울리면 그때 비로소 연기를 피워 올린다. 큰일이 없는 평상 시이므로 앞서 말한 거화의 원칙에 따라 하나의 봉화만을 올린다.거화의식이 전체 의식의 하이라이트긴 하지만 이를 전후에 펼쳐지는 수위의식과 순라의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봉화라는 지리적 특징이 더해져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거화의식이 완전히 끝난 후에는 봉수군과 기념촬영도 할 수 있다.
남산봉수대 주변을 순찰하는 봉수군 순라 행렬의 모습
남산봉수대 거화의식 팸플릿을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
거화의식을 마친 후 외국인 관광객이 봉수군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거화의식 현장에서는 전통 관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는 전통복식체험도 진행된다.
남산봉수대를 지키는 봉수군의 위엄 있는 모습
거화의식은 오전 11시 30분 시작하며 정오를 알리는 보신각 종이 울리면 봉수대에 불을 피운다.
봉수군은 거화의식에 앞서 남산봉수대 일대를 순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