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동의 회화는 대상을 그리지만, 그 대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화면에 등장하는 형상들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기호가 아니라, 시간과 조건이 물질에 개입한 결과로서 존재한다. 돌, 모래, 금, 결정체로 보이는 것들은 단순한 자연의 상징도 은유도 아니다. 그것들은 쉽게 부서질 수 있었으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 더 이상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하나의 지점에 놓인 존재들이다.
윤위동은 오랫동안 ‘닮게 그리는 것’에서 출발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마주한 고전 회화의 충격,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서 느꼈던 강한 희열은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재현만으로는 자신의 질문에 도달할 수 없다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후 작가의 관심은 사물이 무엇을 닮았는가가 아니라, 존재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는가로 이동한다.
이 전환의 계기에는 삶의 어려움과 긴 시간의 산책이 있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마주한 돌, 물, 낙엽, 곤충과 같은 사물들은 윤위동에게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의 조건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그렇게 그는 사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자연을 묘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시간이 물질에 작용하여 남긴 흔적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이 작업에서 ‘완성’은 성취나 결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완성이란 멈춤이 아니라, 변화가 비가역적으로 고정되는 순간이다. 완성 이후 존재는 안정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조건 속으로 이동한다. 윤위동의 회화는 바로 그 완성 직후의 불안정한 상태, 다음 순환을 예비하는 지점에 머문다.
작가가 말하는 ‘순환’은 같은 상태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나선형의 이동처럼, 이전과는 다른 밀도로 통과하는 과정이다.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은 동일한 지점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모든 경험은 축적되고, 그 축적이 다음 상태를 만든다. 돌은 이 작업에서 완성의 상징이 아니라, 완성 이후에도 다시 변화로 나아가는 존재다. 단단해졌다고 해서 운동이 멈추지 않듯, 금이 되었다고 해서 순환이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돌의 상태는 인간을 연상시키지만, 단순한 은유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돌은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않지만 묵묵히 시간을 견딘다. 윤위동은 그 상태에서 오히려 인간의 삶과 더 닮은 모습을 발견한다.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는 태도, 견딘 시간이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화면 전체에 낮은 온도로 스며 있다.
윤위동이 말하는 신성함(The Sacred)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숭배의 대상도, 초월의 영역도 아니다. 신성함은 특별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쉽게 소거될 수 있었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상태,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획득한 존재의 밀도, 그 자체가 신성함이다.
The Sacred은 신성함을 정의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그 개념이 동시대의 감각 속에서 어떻게 다시 사유될 수 있는지를 묻는 자리다. 이 전시는 완성을 찬미하지 않으며 다만 견딘 시간이 존재를 다음 상태로 이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제시할 뿐이다.
The Sacred은 찬란한 결론이 아니라, 조용히 도달한 하나의 지점이다. 그리고 그 지점은 다시 다음 순환을 시작하기에 충분히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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