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남기는 것들(After the Gaze) 기간 : 2026-03-04 ~ 2026-03-18 장소 : 고한시네마 문의처 : 02-720-0345 요금 : 무료 전시 강원 예매하기

상세정보

박주원 개인전

《시선이 남기는 것들(After the gaze)》에서 풍경은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관계가 남긴 흔적이다. 박주원은 판넬의 단단한 평면 위에 색을 구획하고, 대상을 명암으로 모델링하기보다 색면으로 쪼개 단순화한다. 화면은 평평하고 정제되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여러 단위로 구조화되어 세부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이질적인 결합은 그림을 풍경으로 읽게 하면서도, 그 풍경을 단순히 ‘자연’으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대표작 <이처럼 무수한 것들>(2025)에서 가로로 길게 펼쳐진 화면은 얇은 나무들로 가득 차 있다. 나무들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듯 보이지만, 간격은 미묘하게 변주된다. 동일해 보이는 거리 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차이들이 시선을 붙들고, 관객은 눈으로 장면을 훑기보다 화면의 폭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긴 수평 화면은 관람자를 숲 안으로 끌어들이며, 보는 자를 장면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위치시킨다. 이 숲은 계절을 말하지 않고, 꽃이나 초원의 풍요도 없다. 절제된 화면 속 나무들의 반복은 자연의 생태라기보다, 일상을 살아가며 맺어온 관계들의 밀도를 떠올리게 한다. 나무 하나하나는 한 사람처럼 서 있고, 그 사이의 간격은 관계의 거리처럼 유지된다.

<돌이켜보면>(2025)은 이 숲의 시간을 다른 각도에서 되짚는다. 화면 중앙에 몰려 선 나무들은 끝까지 밀려난 듯 밀집해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얼음인지 돌인지 분간되지 않는 경직된 덩어리들은 공간을 차갑게 감싼다. 일부 나무는 꺾여 쓰러져 있지만, 그럼에도 줄기들은 화면 끝까지 뻗어 나간다. 제목이 암시하듯 ‘돌이켜본다’는 행위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는 시선이다. 몰리고 흔들리고 꺾이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배경 삼아 다시 서 있는 상태에서, 이 숲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관계가 만들어낸 구조에 가깝다.

박주원의 화면은 정적인 듯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운동이 발생한다. 얼음 혹은 돌처럼 보이는 배경의 경직된 면들은 화면을 고정시키지만, 나무의 잔가지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떨림, 파란 반원의 경계, 그리고 흰색과 노란색의 대각선이 그 경직을 깨뜨린다. 직선과 곡선, 밀집과 여백, 정지와 흐름이 교차하면서 화면은 고정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자연의 유기성과는 어긋나 보일 수 있는 세로선의 반복이 이 회화에서는 어색하지 않다. 박주원의 숲은 자연의 숲이 아니라, 시선이 남긴 관계의 배열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시선’은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를 남기는 행위다. 우리는 수많은 타인을 바라보고 지나치지만, 그 시선 이후에 남는 것은 장면이 아니라 감각이다. 작가는 거리, 긴장, 밀집, 그리고 서로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연결망 등을 풍경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관객은 숲을 감상하는 대신, 그 안에서 자신의 관계를 떠올리며 서게 된다. 그리고 화면 앞에서 문득 묻게 된다. 이것은 풍경인가, 아니면 내가 지나온 관계의 흔적인가.

오시는 길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10길 28-12 고한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