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 겹쳐진 시간의 흔적
Artist : Kwon Ki-ja (권기자)
Dates : 2026. 05. 07 – 05. 23
Venue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문화길 60
Hours : 10:30 AM – 6:30 PM(Closed on Sundays)
Inquiry : 053-252-0614
현대 미술에서 ‘시간’은 오랫동안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영역으로 머물러 왔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거나 영원을 갈구해 왔으나, 시간을 물리적인 부피와 질량으로 치환하여 눈앞에 제시하는 시도는 드뭅니다.
권기자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 즉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물성(Materiality)’이라는 실체로 고정하고 집적하는 미학적 실험에서 출발합니다.
권기자에게 물감은 형상을 재현하기 위한 도구를 넘어, 그 자체로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는 ‘물질’입니다.
작가는 평면의 캔버스가 지닌 숙명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물감을 고체화하고 오브제화하는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습니다.
그녀의 화면 위에서 물감은 더 이상 색채의 수단이 아니라, 겹겹이 쌓여 굳어진 ‘시간의 화석’이자 작가의 사유가 응축된 ‘지층’으로 기능합니다.
이번 전시 《Time Accumulation》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치열한 수행성(Performativity)의 결과물입니다.
물감을 흘리고, 건조하고, 압축하여 단면을 베어내는 7단계 이상의 고된 공정은 작가의 신체가 직접 개입된 노동의 기록입니다.
지문이 마모될 정도의 반복적인 행위 끝에 드러나는 매끄러운 단면(Stratum)은 작가가 캔버스 앞에서 보낸 인내의 시간을 정직하게 증언합니다.
중력에 의한 자연스러운 흐름과 작가의 의지적인 절단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작품은 회화의 평면성을 탈피하여 조각적인 실재감을 획득합니다.
권기자의 작업은 관람객에게 현상학적인 경험을 제안합니다. 멀리서 마주하는 서정적인 색채의 울림은 감각의 희열을 선사하지만,
가까이 다가섰을 때 마주하는 물감의 조밀한 층위는 삶의 무게와 존재의 숭고함을 환기시킵니다. 이번 전시는 찰나의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억겁의 시간이 응축된 물성의 결을 통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예술적 위로를 전달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