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경한 그리움
갤러리JJ는 김영헌Kim Young-Hun 작가의 전시를 개최한다. 독특한 잔물결 패턴과 색채로 잘 알려진 그의 회화 작업은 동시대 과학문명의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의 감각과 세계 인식을 매개로 새로운 회화의 지평을 열어 보인다. 그것은 비가시적인 전자 파동wave이 진동하는 에너지 세계의 현전인 동시에 메타적 시공간의 기억과 그리움을 향한 시적 은유로 나타난다. 이번 전시 《김영헌: 프록시마》는 더욱 확장된 회화 언어를 보여주는 <프리퀀시Frequency>시리즈와 2009년부터 시작된 대표적인 시리즈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Electronic Nostalgia>의 신작을 포함한 20여 점으로 구성된다.
물감의 층위, 얼룩과 스크래치, 진동하는 선과 면의 생성과 사라짐은 화면에서 연속과 불연속을 오가며 공명하는 아름다운 변주를 만들어낸다. 리듬을 타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획들은 역동성의 한편에 신체의 떨림과 움직임을 섬세하게 전하고, 오래된 듯 벗겨진 색면의 틈새로 드러나는 다른 색의 층위와 함께 시간의 흔적을 담아 노스탤지어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상반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대립과 조화는 작업 특징 가운데 하나로, 디지털의 화려한 인공적 색감, 선들의 질서와 노이즈가 빚어내는 혼돈이 교차하는 회화 세계는 오히려 조화롭게 아름다우며 시선을 끈다. 그것은 때로 가상 풍경Virtual-scape 혹은 음악적 추상처럼 보인다.
가상공간에서의 기억과 함께 시작된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 시리즈는 전자 노이즈로 인한 형상의 파편과 해체에 이어 유토피아적 풍경, 기하적인 픽셀과 파동의 세계로 더욱 추상화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노이즈’ 요소보다 회화의 물질 언어에 더 집중한 ‘프리퀀시’ 시리즈는 흐름의 일관된 방향성과 질서를 부여하고, 묵직한 물감의 두께 즉 물질의 강도로 리듬을 만들어낸다. 좀 더 달라진 신작을 발표하는 이번 전시는 김영헌 작업의 중심에 있는 두 시리즈의 흐름과 현재의 변화를 살피면서 작업세계의 독자성을 조명하고, 이러한 전자적 미시세계를 우주로 확장시켜 본다. 하나로 결국 연결되는 미시세계와 거대한 세계는 우리의 인식 바깥에 있으며, 경험한 적 없는 시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전시 제목인 ‘프록시마’는 우리가 사는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의 이름이다. 그것은 지구의 가장 가까운 이웃별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갈 수도 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으로, 별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광활한 우주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별빛은 이미 지나간 시간으로부터 우리에게 오고, 우리는 오래된 과거의 별을 보고 있다. 별 헤는 밤의 그리움과 파동으로 가득한 과학적 우주가 교차한다.
Ⅰ.
눈으로 볼 수 없는 파동 혹은 주파수Frequency로 이루어진 비물질적인 전자 세계는 김영헌의 작업세계에서 회화의 물질 언어로 치환된다. 그것은 자신이 감각하고 인식한, 전자로 만들어진 디지털 이미지나 가상 세계의 풍경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우리의 일상을 감싸는 빛과 음악 소리의 시각화, 나아가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에너지와 과학적 실재계 같은 비가시적 세계를 감각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작업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전자electronic는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이들의 파동 패턴은 작가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곧 그의 작업은 파동으로 가득한 우주의 역동적인 에너지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은 모험’이라는 자각이다. 그는 붓, 물감, 캔버스, 나이프 등 작업 재료 자체가 그 본성에 충실하도록 철저한 탐구로 새로운 회화적 언어를 실험하고 창출한다. 회화 속 반복적인 줄무늬 요소는 전자적 느낌의 추상 언어를 발생시킨다. 이 줄무늬 파동은 여러 색채가 단 한 번의 붓질로 미끄러지듯 연속하여 생성되는 획들로서, 매끄러운 리듬감과 획 특유의 자유로움으로 인해 드로잉이 갖는 명랑한 즐거움을 획득한다. 이러한 파동 패턴은 노이즈 및 서로 상반되는 색채의 충돌과 절단으로 인해 구축과 동시에 해체되는 형태들로 작동하면서 역동성 있는 에너지 장으로서의 회화적 현실을 구축한다. 그것은 디지털적 신호인 0과 1 사이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의 무한함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는 세상, 그리고 파동의 간섭과 생성의 세계로 수렴한다. 화면 속 리듬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움직임과 생명력을 환기하며, 얼룩이나 색면처럼 다양하게 나타나는 노이즈는 세계의 불연속을 야기한다. 작가의 아날로그를 향한 그리움은 어느새 현대물리학이 밝혀낸 양자역학의 세계를 관통하면서 곧 견고한 것이 아닌, 입자이면서 파동으로 이루어진 우주와 세계의 본질에 대한 사유 역시 가능하게 한다. 디지털 플랫폼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는 현대사회의 흐르고 사라지는 유동성, 정박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동시대인의 정체성처럼 작업 역시 흔들리며 이동하고 왜곡되는 어느 지점에서 진동한다. 그의 회화 작업은 오늘날 달라진 디지털의 환영 속 파편화된 감각을 지극히 아날로그적 매체인 회화 평면 위로 끌어와 현 세대에게 스며든 새로운 감각으로 일깨워 준다.
그렇다면 김영헌에게 왜 ‘전자’ 세계인가? 현재 그의 회화 작업의 개념적 저변을 이루는 동시대 미디어 기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전자 세계, 기술 문명에 관한 깊은 사유에는 다분히 그의 누적된 경험들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 작가에게 디지털 미디어는 꽤 오랫동안 친숙하게 다루어온 매체로서 일찍이 전자 테크놀로지의 빠른 변화와 그에 따른 인간 지각 방식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1995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미디어설치 작업 <현기증처럼 찾아온 단잠>(1995)으로 대상을 수상하여 미술계의 기대를 모았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2009년 귀국하기 전까지 10여 년간 주로 인간 삶의 실존적 양태 등을 주제로 한 특유의 설치 및 영상작품으로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몇 년간의 영상 촬영 기자 경험 또한 미디어의 실과 허를 목격하고 깨닫게 해주었다. 귀국 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 깨어진 꿈》(2010)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설치영상 작업과 함께 2008년 이후 제작한 독특한 형식과 내용의 회화 작업을 발표하며, 빠르게 닥쳐오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미래적 노스탤지어를 제시하였다.
부제인 ‘깨어진 꿈’에서 암시하듯 사물 및 신체는 해체되어 나타나고, 왜곡된 미디어와 최첨단 통신의 급속한 발달 속에서 교묘하게 조작되고 세뇌되는 현실에 대한 문명비평적 시각이 작품을 통해 표현되었다. 현재 그의 작업이 몰두하는 회화적 물질의 실재성이 주는 감각 뒤에는 이러한 미디어의 편재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생각, 지난 것에 대한 그리움과 닥쳐올 것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남아있다. 김영헌은 2020년 하인두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뉴욕, 프랑스, 홍콩을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리움미술관, 자하미술관, 성곡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코오롱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시장에서 작품들은 최근 그가 모색하는 형식적 실험들과 함께, 일견 하얀 배경 위로 물결 패턴들이 유유히 공간 속을 가볍게 부유하고 때로는 서서히 희미해지면서 화면이 틀 바깥으로 확장된다. ‘프리퀀시’ 시리즈는 예전과 달리 파동 패턴의 균질한 올오버페인팅 양상을 띠며, 밝은 파스텔톤 색조와 함께 가느다란 세필이 이루어낸 수많은 섬세한 선들의 흔들림이 일정하게 높은 주파수의 변주로 화면을 맑은 기운으로 가득 메운다. 이는 마치 어떤잔잔한 미니멀리즘 현대음악의 선율처럼 리듬 자체로 울려퍼진다. 한편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항공 장면처럼 지층 혹은 물결 위로 내려앉은 사각의 픽셀 노이즈와 함께 더욱 아름다운 패턴의 변이를 창출한다. 작품 <p23055-Electronic Nostalgia>(2023-2026)는 넓은 붓질과 세필이 대조를 이루고 그 위를 원과 사각 형태가 마치 우주를 떠다니는 듯 입체적 구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이미지는 사라지고 평면 위 두텁거나 얇고, 투명하거나 매끈한 질료적 느낌, 회화적 감각에 집중된다. 대치하던 파동과 노이즈는 어느덧 함께 리듬을 이루며 화합하는 중이다.
작가는 물결, 빛, 음악 소리, 커피 향을 자주 언급한다. 기술 매체와 동시대 감각 그리고 회화적 상상, 그의 그림은 어떻게 지각되고 경험되는가? 전시는 떠오르는 여러 질문과 함께 회화의 새로운 예술 체험을 기대한다. 동시대적 감각에 기반하여 그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과거와 미래, 현실과 가상, 물질과 비물질, 과학과 자연, 낭만과 불안 같은 상반되어 보이는 것들의 틈, 경계에서 작동할 것임을 예감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동 속에 살고 있다. 브라운관 TV의 주사선, 레코드판에 새겨진 소리골, 바람과 물결, 첼로의 아다지오, 휘어진 시간과 공간, 쿼크 사이의 틈, 은하의 소용돌이, 제임스 웹이 바라본 우주, 디지털 가상공간 속의 삶···” —작가노트
Ⅱ.
작업 초기에 시선을 끌었던 테크놀로지 발전과 미래에 대한 이율배반적 생각이나 실존적 불안감은 어느덧 낯설고도 익숙한 추억이나 그리움으로 옮겨오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미래를 넘어서> 시리즈(2008-2009)와 <클라우드 맵> 시리즈(2010-2013)의 회화들은 마치 20세기 초 미래주의처럼 기계적인 운동감의 형상으로 역동적 화면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어떤 징후가 감도는 가상 풍경이자 미래의 풍경화인 듯 나타났다.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 시리즈 역시 초기에는 파편화된 형상을 보여주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이즈와 함께 만들어내는 세상은 어느새 한 폭의 동양 산수화 같은 찬연한 유토피아를 꿈꾸었고, 그것은 다시 현재의 기하학적 도형의 픽셀이 변주를 이끄는 추상의 세계로 수렴되었다.
작업에서 픽셀로 된 노이즈는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색면으로서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스퀴즈나 팔레트 나이프에 의해 색이 벗겨지고 긁힌 채 오히려 고색창연한 자태가 되어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들은 화면에서 파동의 질서를 교란시킨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전자적 노이즈 역시 부지불식간에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전자 세계와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이자 매트릭스이며 혹은 온라인 공간, 가상현실로 이어진다. 곧 노이즈는 틈이자 균열이며, 파동을 교란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리듬이나 공간을 생성하는 인터페이스이다.
김영헌은 전자 세계의 감각을 매개하면서도 오히려 컴퓨터 기술이 아닌 전통적인 회화 매체를 택했다.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향수라기보다 현재의 결핍을 반영하는 감정이며,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가속화된 시대의 불안 같은 것에 대한 방어 기제일 수 있다. 작가에 의하면 그에게는 그리운 기억이 있다. 그의 작업에는 애초에 자신의 감각에 포착된 잔잔한 물결의 일렁임, 즉 물의 파문과 부드럽게 다가오는 바람의 매혹적인 움직임이 몸의 감각으로 전이되는 경험이 내재해 있다. 이러한 자연의 감각적 현상에 대한 경험 이후, 디지털 기술 이전에 흔히 접했던 LP판의 사운드 감성, TV나 전자 기기의 화이트 노이즈 현상이나 빛의 스펙트럼에 대한 기계적 인지와 감각적 느낌, 특히 아들과 인터넷 게임의 가상공간에서 함께했던 기억과 그리움의 감정은 그의 노스탤지어의 기반이 된다. 작가는 이에 관해 발생하는 자신의 감각과 인식을 더듬어 자신만의 현대적 회화 언어로 생성하고 발전시켜왔다. 그것은 한편 가속화된 기술 발전 속에서 예견한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이하림, 2019), 미래적 노스탤지어일 수 있다. 총체성과 연속성이 어려운 시공간, 경험과 기억 사이의 불일치, 가상현실이 남긴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생경한 그리운 감정 같은 것. 이는 전자적 실재와 달리 아련함이 감도는 김영헌의 회화에 전통적인 회화와는 또 다른 미학적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가상현실은 또 다른 가상으로 쉽게 대체되고 휘발되지만 그 소중한 기억은 ‘회화’로 포착되어 그의 현재와 관계 짓고 있다.
Ⅲ.
“그의 삶은 서로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감각들의 불연속적 연쇄가 될 것이다.”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디지털 환경과 미디어는 우리의 사고와 지각 체계 자체를 변화시켜왔다.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 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사용하는 미디어에 의해 감각 비율과 사고방식이 재편되지만, 정작 그 변화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미디어의 영향은 개인의 의견이나 의식 수준과 무관하게 우리의 감각과 인식 구조 자체를 변화시킨다. 스마트폰과 초고속 네트워크가 모든 순간을 파편화하면서 시공간의 거리를 상실한 과잉 초연결 상태로 내몰린 우리는 맞춤형 알고리즘에 의해 저항과 마찰을 제거한 매끄러움의 감각, 끊임없는 정보의 소비로 비물질적인 ‘부유’ 감각에 익숙해졌다. 철학자 한병철이 사유한 바, 디지털화는 인간이 세상과 맺고 있던 단단한 감각의 끈을 끊어버리고 모든 것을 가볍고 매끄러우며 얕게 만들었다.
이러한 디지털 세계를 가능하게 한 데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측하지 못하는 우연한 이탈에 의해 생겨난 것. 이탈이 없으면 자연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20세기 초 현대물리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인식을 바꾸어놓았다. 그것은 세상 만물이 견고한 실체가 아니라 결맞음coherence의 양자 상태 그리고 중첩과 얽힘 가운데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여러 상태일 뿐, 결이 어긋나고 중첩 상태가 무너져야 비로소 확률적으로 가능한 상태 중 하나가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자연이 이처럼 연속적인 흐름의 견고함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불연속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당시의 예술에서도 나타났다. 불확실성은 예술에서 추상화, 사실적 재현의 파괴와 변화로 나타났고, 현대미술에서 심리학적이고 형이상학적 내면세계의 반영으로 표현되었다.
디지털화는 결국은 현실 자체를 없애고 머지않아 우리의 시야는 3차원 디스플레이와 같아질 것이라고도 예견하는가 하면, 다양한 강도로 이루어지는 네트워크로서의 이미지 경험은 피에르 위그의 작품 등 동시대의 수많은 영상 작품의 미적 체험에도 나타났다. 우리 시대의 시각 조건 자체가 변화함에 따라 회화의 경험은 어떻게 새로울 수 있는가? 김영헌은 전자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디지털적 감각과 존재 방식에 주목하여, 기존과는 달라진 감각과 감수성으로 회화의 새로운 형식과 색채를 탐구한다. 그의 회화 작업에는 디지털 이미지 및 속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따른다.
웨이브 리듬의 왜곡과 절단, 보색 대비가 다채롭게 어우러지는 화면은 판타지적 감각과 에너지의 생동감이 교차한다. 그것은 마치 물리학적 진실처럼 이탈과 중첩, 생성과 단절을 거듭하는 일련의 불연속성이 회화적 특성으로 나타난다. 화면 속 추상의 필치가 빚어내는 과감하게 분할 절단된 구성으로 인한 불연속은 현대인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때 겪는 파편화된 감각의 경험일 수 있다. 한편 사랑스러운 파스텔톤의 맑고 옅은 느낌을 오가면서도 인공적인 선명한 색채나 형광색은 스스로 빛을 내는 RGB 가시광선과 유사하여 현실감에서 멀어진 사이버틱한 분위기 혹은 가상공간의 느낌마저 준다. 자주 나타나는 초록과 핑크, 노랑과 파랑 등의 보색 관계는 디지털이 가진 속성이다. 작가에 의하면 “화면 위의 색면, 형광색, 절단된 구성 등이 디지털적 속성을 환기한다면, 혁필 줄무늬, 뿌려진 물감 자국, 팔레트 나이프의 흔적, 기하학적 선과 스크래치는 아날로그적 속성을 드러낸다.” 작품에서 대비되는 요소들의 충돌과 간섭 현상은 마치 진동하고 공명하는 파동처럼 또 다른 생성을 유도하면서 화면의 리듬과 에너지는 무한히 확산된다. 개념적으로, 시각적으로 디지털의 분절과 아날로그적 유연함이 공존하는 그의 작업은 매체의 물질성과 신체적 행위에 의한 회화적 표현, 회화 평면의 경험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일찍이 지난 세기에 들로네는 색채의 동시성Simultaneity 감각으로, 색채가 나란히 놓였을 때 착시와 감각적 반응을 통해 음악처럼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다양한 색상의 상호작용이 움직임과 깊이의 인상을 생성하는 방식, 보색과 상반되는 색을 나란히 배치하여 색조의 효과를 연구했고 칸딘스키 역시 색채의 감정적 효과, 보색 대비의 색채 효과에 몰두하였다. 김영헌의 파동 이미지의 일렁이는 리듬감은 공감각적으로 작동하여 마치 음악에서처럼 즉각적으로 관람자의 신체 파동과 공명하고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기도 한다. 평론가 김윤섭은 ‘적당한 호흡 주기와 시각화된 음표의 언어들은 그대로 추상미술의 시적 언어의 재탄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에 의하면 예술은 직접 서술하지 않아도 실재를 은유적으로 접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재를 인식하는 기능을 갖는다. 화면의 세련된 감각과 리듬, 부유하고 흔들리는 시적 언어는 작가가 가진 노스탤지어의 은유이자 그 틈새로 확률적으로만 존재하는 미시세계, 수많은 별이 가득한 우주, 불연속적이며 서로 중첩되고 연결되어 있는 우리 삶과 세계의 근원이 어른거린다. 과학적 실재와 생경한 그리움··· 실재와 감각 사이의 긴장감은 김영헌의 회화를 아름답게 만든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디지털 삶 혹은 현실 삶의 모호한 경계 일부를 간섭하는, 전자electronic와도 같은 추상 회화 언어를 생성한다.” —작가노트
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